"이병헌 나오네, 무조건 봐야겠다" 침대위에 누워 실눈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 예고편을 접했다. 영화관 안간지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볼만한게 나왔군. 생각하며 이병헌 나오는 작품이라면 믿고보는 엄마에게 링크를 보낸다. 그만큼 이병헌 브랜드 파워가 세긴 세나보다. 저렇게 한 분야에 끝장난 전문가가 되면 참 행복하겠다 하고 잡생각을 하다 잠이들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했네! 보러가자. 주말 아침 오랜만에 영화관 가는 기분에 설레며 적절한 자리를 예매했다. 박보영이랑 박서준도 나오네. 대박. 영화관에 도착해서야 포스터를 찬찬히 살펴본다. 팝콘을 야무지게 사서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본다.
단순 지진 재난영화라 생각했고 평소 재난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그것만으로도 주말에 시간을 쓰기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생각보다 주는 메시지가 찐했다.범죄도시같이 자극적인 롤러코스터 같은(그러나 남는 것은 하나 없는) 영화만 보다 오랜만에 사유할 수 있는 영화였다. 흡사 기생충을 보고 난 뒤의 여운과 비슷한 느낌.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평을 공감하고 싶어 후기를 뒤져보니 '박서준이 가장 평범했어. 그러나 역시 박보영처럼 착하게 살아야 돼' 하는 평과 '박보영이 발암이네' 등등 크게 2가지 갈래의 단순한 평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생각은 조금 다르다. 선한 이미지의 캐릭터로 박보영(극중 명화)을 설정했지만 막연히 선한 캐릭터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황궁 아파트 사람들 입장에선 상황파악 못하고 자기 신념만 고집하는 사람이자, 본인도 공동의 규칙으로 인해 편의를 누리면서 공동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보면 발암캐라는 것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ㅎㅎ
황궁의 규칙에 몰입된 나는 더 나아가서 정답이 도대체 무엇일지 혼란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병헌이 어떤 출신의 사람이건 이렇게 아파트를 위해서 희생하는데(그것도 가장 선두에서) 굳이 굳이 밝혀내서 긁어 부스럼을 낼 필요가 있을까. 본인도 완벽한 사람이 아닐텐데 어느정도의 융통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황궁맨션을 나오면서 박보영이 새롭게 얻은 보금자리에 다다랐을 때 행인과 나눈 대화는 나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임팩트를 줬다. 명화 : "여기 ... 살아도 되요?" 행인 : "(질문 자체에 의아함을 느끼며) 무슨 그런 질문을 하세요. 본인 마음이죠. 이거 하나 드시고 좀 쉬세요." 명화의 입장에서 아파트 외부 사람들이라면 아득바득 모두 내쫓고, 몰래 받아주는 입주자들이 있다면 일렬로 세워두고 벌주던 황궁맨션의 그림만 보다가 바깥의 이런 상황이 얼마나 센세이션 했을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크게 2가지 메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번째로는 선과 악의 경계도, 그것이 정답이라는 판단의 근거도 어쩌면 참 모호하다는 것. 집안에서는 따뜻하고 배려심 많았던 민성(박서준)이 황궁맨션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악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박서준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그 마음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느낀 점은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람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기 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더 정확하고 가까울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이 괴롭고 나와 신념이 영 맞지 않다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니 환경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는 메시지를 얻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내 일상의 행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함께 얻었달까.